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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둘레길 보은길3구간 백현리 관방유적 - 태봉산성과 백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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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10-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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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산성(胎封山城)]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백현리의 백현마을 북쪽 해발 491.2m에 위치한다. 산외면과 속리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하여 성안에서 바라보면 바로 동쪽에 인접한 ‘백현산성(柏峴山城)’을 비롯하여 주변의 잣고개·백현마을·백석마을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평면형태는 산꼭대기에서 동쪽으로 늘어진 곳을 감아돌면서 마치 열쇠구멍과 같은 모양으로서 둘레가 약 170m의 작은 규모이지만, 교통의 요지를 내려다보며 지키기에 알맞은 곳에 만든 전형적인 산봉형 산성이다. 산성 안쪽의 꼭대기에는 민묘 1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민묘를 중심으로 석축이 둘러져 있으나 대부분 무너졌다. 남쪽과 서쪽으로 군데군데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석축은 암반에서 떼어낸 장방형의 석재를 치석하지 않고 쌓아 면이 거칠며, 경사가 심한 지형에 내탁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산봉우리에 임금의 태(胎)를 묻어서 ‘태봉’이라고 불린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며, 문헌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성내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축성연대를 확인할 수 없으나, 규모와 위치로 보아 인접한 백현산성이 경영되던 삼국시대의 어느 시점에 축조된 보루성으로 보인다.

 

 

[백현산성(柏峴山城)]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백현리의 백현마을 북쪽 해발 325.1m에 위치한다. 주변의 교통로는 속리산에서 보은읍을 거치지 않고 미원 및 괴산 방면으로 통행할 수 있는 길목으로서 37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지역에 위치하여 ‘사내천’이 남·동·북쪽으로 휘돌아 흘러 자연해자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에는 성고개[잣고개, 柏峴]를 사이에 두고 보다 높은 해발 491.2m 산봉우리에는‘태봉산성’이 위치하여 마주보고 있다.

평면형태는 사방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룬 봉우리의 9부 능선을 돌려 쌓은 산봉형산성으로서 동서로 긴 타원형이며, 전체둘레는 안쪽으로 재보면 약 268m이다. 남쪽과 서쪽으로 군데군데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석축은 암반에서 떼어낸 장방형 석재를 별도의 치석없이 쌓았으며, 경사가 심한 지형은 내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동쪽 능선과 남쪽 사면으로 동문지 및 남문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나, 이곳이 성문지였는지는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성 안쪽에는 삭토된 평탄지가 5∼7m의 너비로 마치 내환도(內環道)처럼 돌려져 있으며, 동쪽은 넓은 평탄지가 있어 건물지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속리면 백현리의 국유림에 있는 성터로서 성의 이름은 모르나, 백현리 부락의 북쪽 약 180m의 거리가 되는 작은 언덕 위에 있고, 둘레가 약 170간(間, 약306m)이나 전부 무너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에 대하여 정확한 학술조사가 없었으므로 언제 축조되었는지 모르지만, 산성의 위치가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의 최상류지역이면서 인접한 ‘태봉산성’과 성고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면서 전설에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이었다.”고 하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보은의 성곽(차용걸, 보은문화원, 2002), 문화유적분포지도-보은군-(중원문화재연구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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